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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식품 관련 보도, 기자도 두렵다

"11년 전인 2005년 10월경으로 기억된다. 당시 2년차로 초년병 기자였던 시절,

정신없이 경찰서와 사건사고 현장을 쫓아다니곤 했었는데 토요일 휴일근무로 출근한 어느 날이었다."

 

국산 송어, 향어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는 식약처(당시 식약청) 발표 직후였는데, 수산시장이나 횟집 등에 손님 없이 썰렁한 모습을 담아 뉴스를 만들라는 지시를 받았다.

어떻게 하든 내 이름으로 된 리포트를 많이 만들고, 또 TV에도 많이 나오고 싶었을 만큼 의욕에 넘쳤던 시절이라 노량진 수산시장부터 시작해서 시내 곳곳의 횟집, 생선가게를 누비고 다녔다.

 

하지만 막상 현장 반응은 의외로 차분했다.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는 건 일부 민물고기에 국한된 얘기여서 주말을 맞아 횟집이나 수산시장이 그렇게 썰렁하지 않았고 손님도 꽤 있었다. 
마음이 초초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데스크 지시 내용대로 뉴스를 만들 수 없을 것 같았고 그렇게 되면 애써 하루종일 돌아다녔는데 TV에 이름 한 번 못 내고 퇴근해야 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기를 쓰고 돌아다니면서 시내에서 벗어나 먼 교외까지 가서 최대한 썰렁해 보이는 모습을 찍으려고 애썼다.

시민 인터뷰 또한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는 인터뷰도 많았지만, 그래도 걱정스럽다고 대답한 시민들의 인터뷰만 추려냈다. 그래서 결국 약간의 억지를 부려 “시민들 충격, 식당 횟집 썰렁...” 뭐 이런 제목으로 적당히 리포트를 했던 기억이 난다.

 

10년이 넘게 지났지만 내 스스로 부끄럽게 느끼는 리포트 중의 하나라서 그런지 아직도 당시의 취재 과정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기자들, 특히 방송기자들은 늘 ‘선명성’과 ‘선정성’의 유혹을 받는다.

방송뉴스는 지면 기사에 비해 길이가 짧고 영상으로 휙 지나가 버리기 때문에 이러저러한 사정을 정확히 다 반영하기 어렵다. 그래서 간결하고, 짧고, 명확하게 제작하라는 교육을 입사 이후 계속 받게 된다.

 

그리고 방송 뉴스가 주는 메시지는 선명해야 한다. 메시지가 선명해서 짧은 시간에 시청자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주도록 일종의 ‘선정성’도 요구받는다.

이 때문에 사내에서 인정받고 싶고, 또 자신의 목소리와 얼굴로 전달하는 뉴스를 많이 만들고 싶은 방송 기자들에겐 선명성과 선정성이 버릴 수 없는 덕목인 동시에 극복해야 할 장벽이기도 하다. 특히 식품을 다루는 뉴스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기자생활을 시작한지 1년이 채 안됐을 때 터진 이른바 ‘쓰레기 만두’ 파동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의욕에 넘쳤던 병아리 기자로서 너무나도 큰 충격과 자괴감을 경험했다.

 

 

2004년 온 나라를 뒤흔들었던 쓰레기 만두 파동은 경찰청의 보도자료에서 시작됐다.

 

경찰청 본청이 직접 나서서 불량만두를 적발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당시 문구는 이랬다. “쓰레기로 버려지는 단무지를 만두소로 사용하여...” 라는 부분이 적시됐다.

정확한 사정은 이랬다.

단무지에서 만두소로 쓰이는 부분, 즉 단무지의 가운데 부분을 제외한 가장자리 부분은 보통 그냥 쓰레기로 버리는데, 이 가장자리 단무지를 위생검사도 제대로 안하고 만두소로 사용했다는 내용이다.

 

만두소 자체가 쓰레기였다는 내용은 전혀 아니었지만 모든 방송, 지면, 인터넷 할 것 없이 “쓰레기 만두”라는 표현을 대문짝만하게 화면과 지면에 박아가며 연일 선정적인 보도를 이어갔다.

경찰이 직접 찍어서 방송사에 제공한 영상이 화면을 장식했는데 그 화면도 문제가 있었다.

적발 대상이었던 ‘가장자리 단무지’ 외에도 진짜 순수하게 쓰레기로 버려졌던, 다시 말해 만두에 사용된 게 아니라 그냥 쓰레기로 버려지는 식품들도 같이 화면에 찍힌 것이다.

 

결국 경찰이 수사해서 적발한 ‘가장자리 단무지’외에 진짜 쓰레기로 버렸던 식품들이 함께 방송을 타면서 모든 시청자들이 그 ‘쓰레기처럼 더러운’ 물질이 모두 만두소의 재료로 쓰였다고 생각하게 됐다.

사회적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수많은 만두가게가 문을 닫았고, 급기야는 만두제조업체 사장이 한강에 투신해 목숨을 끊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 자살한 만두업체 사장이 한강에 투신하기 하루 전날 밤, 지상파 TV토론 프로그램에 전화를 걸어 “억울하다. 이제 더 잃을 것도 없다.”고 울부짖었던 모습이 생방송을 탔다.

초보 기자로서 그 모습을 지켜본 내게 그 다음날 있었던 투신자살 소식은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언론들은 그때서야 조금씩 흥분을 가라앉혔고, 방송에서도 “쓰레기 만두” 대신 “불량 만두소” 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멀게는 1989년, 공업용 쇠기름을 사용했다는 라면 ‘우지파동’도 선정적인 수사발표와 보도의 극명한 사례라 하겠다.

 

당시 업계 1위이던 라면회사의 매출은 급격히 고꾸라졌고, 1천여 명의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야했다.

하지만 이 어마어마했던 사건도 9년 뒤 결국은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작년에 있었던 백수오-이엽우피소 파동도 비슷한 맥락이다.

소비자원이라는 국가기관이 식약처와의 충분한 사전협의도 없이 독성 이엽우피소가 사용됐다고 발표했고,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로 이어지면서 현재 국내 백수오 시장은 사실상 전멸상태가 됐다.

백수오 제조업체는 검찰에서 무혐의를 처분을 받았고, 아직 이엽우피소의 유해성 여부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초기의 사건 발표, 그리고 언론의 대대적 보도, 이것으로 게임 끝이었다.

 

경제부 기자로서 식품업계를 취재하면서, 욕심 부리지 않고 최대한 차분하고 냉철하게 뉴스를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일해왔다.

작년에 한 업체의 가공우유제품에서 살모넬라균이 검출돼 자진회수에 나섰고, 유명 참치 업체의 참치 캔 안에서 검붉은 변색 현상이 나타나 긴급 회수하는 결정이 내려졌지만, 당장 크게 보도할지 여부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했고, 부서 내부 논의와 검토를 거쳐서 이미 회수조치와 정밀 검사가 진행 중인 만큼 최대한 건조하고, 짧게 기사를 내보내기로 결론 냈다.

그 선택은 옳았다.

정밀 검사 이후 추가적인 문제가 발견되지도 않았고, 비교적 단시간에 상황은 정리됐다.

 

 

하지만 방송에서 식품관련 뉴스만큼 매력적이고 소위 ‘핫’한 주제는 없다.

 

‘먹방’이 유행하면서 재미있고 유익한 식품 관련 뉴스도 많이 늘었다.

그런 아이템을 개발하기 위해 머리도 많이 굴리고 있지만, 아직도 특정 식품에 문제가 있다거나 건강에 유해하다는 뉴스는 방송 뿐 아니라 모든 언론에서 가장 먼저 달려올 주제다. 그리고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식품의 유해성 관련 뉴스를 다룰 때, 관련업계 당사자만큼, 취재하는 기자도 스스로 두려움을 느낀다.

국민건강에 미칠 영향이 두렵고, 사회적 파장도 두렵다.

맛있고 건강에 좋은 신제품들이 많이 출시되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면서, 동시에 식품업계에 바라는 게 있다면 단 0.001%의 가능성이라도 차단할 수 있을 만큼 위생에 신경써달라는 것이다.

작은 실수 하나가 엄청난 사회적 혼란과 업계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본 칼럼은 홈페이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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